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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방관자-국가원로회 서신 213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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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방관자-국가원로회 서신 213호

새벽이슬1 2021. 9. 28. 09:26






☆ 국가원로회 서신 213호 ☆

        - 침묵의 방관자 -

■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이 흐르는 물은 소리가 없듯이 침묵은 결코 가볍지 아니하다. 때론 '사랑한다'는 한마디의 말보다도 고요한 침묵의 눈빛이 더 강한 사랑을 표시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소리 내어 표시하는 강한 투쟁보다는 말 없는 깊은 침묵이 더 강력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 후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농부의 마음도 침묵에 비유할 수 있다. 침묵의 장점을 극대화해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조선 초기 인구의 40%까지 차지했던 노비는 백성이 아니었다. 농사짓는 양민이나 백정질을 한 천민까지 합하여 50% 정도가 수백 가지 姓을 가진 백성이었지만 이들 또한 가난으로 인하여 생계가 어려워지면 엽전 닷 냥에 노비를 자청하였으니 기실 자기의 의사를 표출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10% 정도의 선비 계급인 사대부를 제외하곤 생각한 바를 말이나 글로 섣불리 나타냈다가는 치도곤을 당하기에 십상이라 '침묵'은 이때에도 미덕에 속할 충분한 가치를 지녔었다.

그런 조선에서 사람들은 침묵을 깨기 시작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왜사냐건' 묻는 질문에 '그냥 웃지요' 답하던 여인네의 침묵이 서구로부터 유입된 풍조로 인하여 정숙한 교수 부인을 탈출하게 만들어 해방된 '자유부인'을 탄생케 했고 유럽을 뒤흔든 마르크스의 유령은 말 못하고 살아왔던 머슴이 그 침묵의 앙갚음으로 지주의 목을 낫으로 치는, 울분이 정의가 된 시대의 흐름에서 만인의 소름을 돋우어 냈다. 동구의 몰락으로 이미 판세는 뒤집어졌건마는 현재 또한 대한의 땅에서는 적폐청산의 기치 아래 복수대전의 모습을 펼치고 있다.

■ 그들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침묵'을 계산한다. 김포의 40대 가장 택배 자영업자가 민노총으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하여 극단의 선택을 했을 때 정부와 민주당이 지켰던 침묵, 그리고 지난 5월 평택항 노동자의 산재 사고 시 평택까지 내려가 슬픔의 감성팔이를 했던 대통령의 모습을 비교하면  그들이 두드린 주판의 법칙은 중산층 붕괴를 염두에 두고 작동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확장된 굿판이다.

계산된 침묵으로 재미를 보던 저들도 2019년 10월 3일 엄청난 태극기의 물결에는 자칫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가 태극기부대로서는 절호의 찬스였다. 기미독립선언보다 더 강력한, 청와대를 쓸어버릴 몇십만 명의 쓰나미급 파도를 대기시켜 놓고도 사회를 보았던 원조 좌파 이재오의 철수 명령으로 진격이 와해되고 말았다. 경찰이 스스로 밀려주었던 그날 밤, 문재인과 김정숙은 침묵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날 이후 코로나는 그들의 구세주가 되었다. 광화문에 포졸을 앞세운 K-방역의 신출귀몰이 노비의 본성을 터치하여 침묵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에서는 종적을 감추다가 자영업자 식당에는 홀연히 나타나고, 민주노총 집회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게 교회에서는 기승을 부리고, 두 명이면 피하던 게 네 명 이상이면 용감해지고, 어쨌든 마스크를 써보니 호흡기 질환에 안 걸린다는 명백한 사실은 K-방역의 당위성을 입증하고도 남았음에 광화문 노비들의 저항은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저들은 침묵의 효용 가치를 완벽하게 터득했다. 김어준, 조국, 손혜원, 정청래, 설훈의 광기어린 침묵의 타파가 탁현민의 무대조명과 함께 문재인을 엄호하고 고영주와의 공산주의 논쟁에서 패소한 문재인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간첩임이 분명해도 그의 침묵은 국가보안법까지 잠재운다. 강자의 침묵은 고요한 물의 장중함이다.

■ 그런 재기발랄한 '침묵'의 가치가 야권에 도입되면 180도로 돌변한다. 적을 향해야 할 이준석의 새털 같은 청춘 방송이 유승민을 제외한 대선후보들에 날을 세우는데 그 경박함을 질타해야 할 사정없는 죽비는 침묵의 바닷속에 잠겨있을 따름이다.





그러니 국민의힘 침묵은 금이 아니라 똥이다. 침묵이 생존의 미덕이었던 노비 태생의 민초들에게는 사대부에 속할 권력 있는 그들의 행보가 거친 바다의 등대이겠거늘 김대중의 아방궁을 지어주는 것도 모자라 4.3을 추모해 님을 향한 행진곡에 발맞추고 언감생심 호남의 표를 얻으려 5.18묘역에 눈물 흘리는 촌극, 그리고 '최종병기 활'과 같은  4.15부정선거의 빽빽한 증거는 극복해야 할 바람도 아니고 그저 계산만 하면 끝나는 밥상인데 지 배때기 부르다고 입을 닫는다.

침묵 효용의 법칙은 조.중.동 주류 언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양심은 있다는 듯 탄핵 공동정범들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다섯 배 징벌적 언론 손해배상법에 혹시라도 망할세라 양잿물을 들이킨 양 팔짝팔짝 뛰는 꼴이 한없이 추하다. 장관 자리 안 준다고 자근자근 씹어서 30년을 유폐시킨 일등 공신이 동침을 거부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니 이제야 노비들을 선동하여 문재인을 끝내잔다.

이쪽 노비들은 침묵으로 방관한다. 거기에 보태어 헤프기까지 하다. 윤석열도 좋고 유승민도 띵하오. 기준이 그러하니 안 까봐도 안다.

저쪽 노비들도 말은 없지만, 생존의 법칙을 따름에 방관자는 아니다. 재명이든 낙연이든 대세를 따른다. 의리를 앞세운 호남과 '죽어도 고'라는 민노총이 선도한다. 10월 20일 민노총 테제는 체제 전복이라 했다. 다 같이 죽는 줄도 모르고, 참 병신답다. 책임이 없는 자유는 끝장난다는 뜻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버린 날 아침, '서글픈 평화'가 묘지를 가득 채웠다고 셰익스피어는 썼다. 기은주, 1주일 이내에 딥스테이트를 끝장낸다는 마이클 폴린 장군의 텔레그램 메시지가 희망 고문이 아니기를 기원하고 있다.

2021년 9월 25일

우리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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