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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와 반역자 본문
☆ 국가원로회 서신 212호 ☆
- 배신자와 반역자 -
■ "44년 전 정규과정 교육 당시 미 의회에서 김형욱의 조국에 대한 배신행위가 절정에 달했다. 그때 교육생이었으나 우국충정의 열혈 애국자 ㅇㅇㅇ 동지가 분기탱천하여 '조국을 배신한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나를 미국으로 보내주면 김형욱 배신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단하겠다' 고 일갈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하략)"
"(전략) 3년 전 미국 다녀올 때 뉴저지 한 교회에서 김형욱 씨의 인척이라는 여성분을 우연히 만났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겪는 고난과 공산화로 가는 조국 상황에 대해 너무나도 안타까워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계시더군요. 매국의 대가로 상당한 재산을 손에 넣은 김형욱 씨와 달리, 그분은 인척이기만 할 뿐 어렵게 살지만 그 연세에도 성실히 일하며 이민생활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그래도 양심과 의리를 저버린 김 씨보다 마음은 훨씬 깨끗한 분이지 싶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략)"
서신 211호에 대한 두 개의 댓글이다. 그랬다. 그때는 그랬다. 김형욱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대단했었다. 가난에 찌들어 못 배운 부모들은 자식들을 어떻게 하든 가르치려 하였고 고마움을 안 자식들은 부모의 마음에 보답하려 열심히 공부했다. 노비의 근성에서 5000년 만에 깨어나고 있던 백성의 눈에 비친 김형욱은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든 배신자였기에 누구나가 분기탱천했다.
■ 김형욱은 분명 박정희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배신했다.
그러나 그는 김일성에 붙어먹지는 않았다. 주체할 수 없는 욕심으로 배신은 했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바꾸려는 반역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도 조국(祖國)은 배신의 책임을 물었다. 2년 뒤 그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하여 제거된 것이다.
김대중은 어떤가. 유신헌법은 독재라며 누구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거했다. 그때 김대중은 일본에 머물며 김일성의 지령과 자금을 받은 간첩 곽동의와 모의해 망명정부를 세운다며 반국가단체인 한민통을 결성했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라 반역이었다. 중앙정보부는 1973년 8월 반역자 김대중을 과감히 소환하여 내란 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는 단서가 되게 했다. 그런데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도 있는 무소불위 지금의 대법원까지 40년 동안 김대중이 반국가단체인 한민통의 수괴라는 판결문을 고치지 못했다.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은 어떤가. 친북 친중의 한계를 넘어 사상 초유 현직 대통령이 출생의 비밀에 함구하고 간첩이라 해도 변명도 못 하고 있다. 바로 반역자라는 걸 시인한 것이다. '오아시스 작전에 군 수송기 투입은 문 대통령 아이디어'라는 문비어천가까지 일인 숭배의 시진핑을 닮아간다.
이런 반역자를 처단해야 할 MI6의 M같은 국정원장이 제임스 본드도 거들떠보지 않을 천한 것과 도색 질이나 해대고 있으니 근본이 가발의 졸부라 나라 말아먹는 좌파의 무능함에 치가 떨린다.
■ 10.26 이후 40%까지 치솟던 인플레를 좌파 수장 한완상을 총리로 세우고 말년에 곳간까지 텅 비게 한 김영삼이 잡을 수 있었을까? 이제 막 고속도로 뚫어 포항제철에 마산. 창녕 공업단지 짓고 곳간은 텅 빈 체 김정일의 외투를 벗기는 데 필요했다는 10억 불의 햇볕을 김대중이 인플레를 잡아 과연 마련 할 수 있었을까?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이라는 역사의 가정법을 도입해 본다면 박정희와 함께 혁명을 주도했던 JP마저도 정권을 잡았다면 로맨티시스트의 유약한 감수성으로는 인플레를 잡기는커녕 여론에 짓이겨져 박정희의 18년을 난도질 했을 테고 대한민국 신화는 그때 싹이 잘렸을 것이다.
전두환의 12.12가 없었다면 안보의 둑은 김일성의 계산대로 그대로 함몰되고 박정희가 쌓아 올린 경제개발 로드맵은 보릿고개 문턱에서 사그르르 내려앉아 독재자의 무덤에 침을 뱉는 행사가 수학여행 일정표에 짜였을 것임은 물론이다.
전시 중 진해에서 개교한 첫 4년제 육군사관학교의 수준은 멸치 포대 싸 짊어지고 들어간 김영삼의 서울대 못지않았다. 전두환은 그런 육사에서도 동기생들의 신임을 받았던 리더였다. 그의 리더십이 최광수는 외교, 김재익은 경제, 이런 식으로 행정의 균형추를 잡았고 자칫 그대로 주저앉을 박정희의 18년을 기적처럼 회생시켰던 것이다. 김일성이 아웅산을 폭파한 이유다.
전두환이 있었기에 박정희가 세계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었다는 역설이다. 단임의 약속을 지킨 것도 누군들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용단이었다. 하나 더, 클린턴이 북한을 두들겨패자 했을 때 김영삼은 좌파들의 기세에 눌려 거절했다. 전두환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모양 이 꼴을 안 봐도 될 텐데 참으로 아쉽다.
흠결도 있었다. 김일성이라는 희대의 살인마를 마주한 OK목장의 결투와도 같은 생사를 건 안보의 대결에서 연좌제를 철폐한 것. 노태우의 노조 전면 허용과 함께 진지전이 승기를 잡게 한 결정적 실책으로 이 또한 후일 자유통일한국의 사초에 기록될 것이다.
■ 김일성이 전주가 된 진지전은 때를 만났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래 북한특수군을 들먹이기만 해도 벌금을 물리고 콩밥을 먹인다니 법을 지키면서 말은 바로 하기로 하자. 당시에 군은 물론이고 안기부의 보고서와 함께 최종 확정된 대법원의 판결문까지도 20사단 지휘 차량은 300여 명의 연고대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탈취했고, 3대의 장갑차와 수백 대의 트럭도 또 다른 300명의 연고대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탈취했다고 분명히 결론지었는데 그들은 다 어디 가고 광주에 얼씬조차 하지 않은 이해찬이 유공자라니 그 명단을 까라는 게 과연 무리한 요구인가.
흰 수건 질끈 머리에 동여매고 장갑차로 내달리던 그 멋진 영웅과 찔레꽃을 시신 위에 놓고 각목 휘두르며 시위대를 이끌던 사진 속 주인공, 금남로 거리에서 교통을 통제하던 장발의 경찰은 과연 어디로 가셨기에 6개월이나 공영방송에서 목메어 애타게 찾았음에도 어린 김경수만 유공자로 나타난 사연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데 그게 지나치단 말이냐 말이다.
진지전의 승리로 문재인만 대통령을 찬탈한 게 아니었다. 그들 좌파 패거리들은 4.15 부정선거까지 획책하여 180석 싹쓸이 결과에 오히려 당황해서 환호성도 내지르지 못하였으며 1년을 훌쩍 넘긴 재검표에서 그 부정의 물결은 한강둑까지 넘어뜨릴 기세로 차고 넘쳤지만 그를 밝혀야 할 대법원까지 투표지를 위조할 줄, 아~ 꿈엔들 잊힐 리야.
■ 이 모든 것은 배신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헌법에 역행하는 반역이다. 9.19합의로 여적죄를 저지르고 자국민을 바다에서 타죽도록 내버려 둔 살인 방조, 귀순자를 북송하여 총살케 한 반인륜 범죄 등 죄상은 즐비한데 그런 반역질을 질타하고 여적죄의 책임을 물어야 할 야당이란 것들은 사색당파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또 다른 징비록을 쓰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다.
적통을 잇겠노라 출사표를 던지고선 백선엽은 물론 이승만과 박정희 참배도 없이 5.18로 달려가 묘비를 쓰다듬고 무릎까지 꿇은 채 광주의 애가(哀歌)를 부르며 거지 행색으로 표를 구걸하니 저것들이 당선되면 눈치를 보느라 박근혜의 석방은커녕, 형량을 더 늘리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까지 든다.
'궁(窮)하면 통(通)한다'고 했다. 남한에선 가짜뉴스가 판치고 북한에선 가짜지도자가 버젓이 활개친다. 기생충이 의지할 숙주가 아무래도 수상쩍다. 태극괘는 靑이 성하고 赤이 멸함에 거칠 것이 없다 한다.
그날, 白衣社가 차떼기들 속에서 배신자를 고르고 북한에서 넘겨준 보위부 명단 속 반역자를 색출할 것임에 우리 모두 깨어나 태극의 제단에 번제를 올리기를 쟁반 같이 둥근달 한가위를 맞이하여 다짐하노니!
2021년 추석을 맞아
풍요로운 한가위만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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