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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잡힌 눈길

새벽이슬1 2021. 9. 14. 08:51


☆ 국가원로회 서신 211호 ☆

- 카메라에 잡힌 눈빛-

■김형욱이 미 국회 청문회에서 대한민국에 등을 돌리던 45년 전, 이문동에 위치한 정보학교에서 1년간 소위 '정규과정'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합숙을 하면서 받는 각종 육체적 훈련이 수반된 교육은 당시로서는 미국의 CIA나 과거 일본의 나까노(中野)학교에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득 심어줄 만큼 대단했다.

그때만 해도 코리안 제임스 본드를 양성해낸다는 교육에 20대 중반의 총각들이 조국과 민족을 쌍견에 짊어지고 지고지순한 순국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추운 겨울의 새벽에 불태우던 훈련은, 돌이켜보건대, 그것은 낭만이었다. 신세대 개념이라며 모든 것이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21세기 바로 전, 20세기 후반부의 청춘들에게 '애국'은 자랑스러운 마음속 훈장이었던 것이다.

내무생활은 사관학교 4학년 수준이었지만 특전사의 공수훈련, 인천 월미도를 기점으로 사창가 하수구에서 똥물까지 뒤집어써야 하는 적진 침투 UDU훈련은 봐주는 게 없이 힘들었다. 보통 때는 난생처음 라디오를 만들고 열쇠 따는 법하며 대상자를 미행하는 사진을 찍은 후 여관방에 도청기를 설치해 아베크족들의 밀회를 관음하는 교육으로 호기심 천지였고 나중에 평가하는 시간에는 서로가 돌려서 보는 덤까지 나눌 수 있었으니, 월급 주겠다 몸 건강해지겠다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판검사 부럽잖은 '짱'이었다.

■이회택이 소속된 양지 축구팀을 운영할 정도로 막강한 KCIA의 정보학교 교수진 또한 최고의 수준이었다. 사진학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서라벌 예대의 교수가 스카우트되어 무려 300시간 가까운 교육을 담당했다. 휴식 시간이면 구레나룻이 어울리는 명성에 걸맞은 그 교수님은 파이프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고, 하여간 모든 게 멋있게 보였다.

수십컷의 촬영 과정을 거친 시내에서의 미행 대상자는 바로 카메라에 소환되었다. 캄캄한 암실에서 필름이 꺼내어지고 물에 담가 흔들어 인화와 현상의 창조 과정을 거치면 까무스레한 점과 선의 형태로 시작되던 그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는 참으로 신기했었다.

교수님은 설명했다.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이미지를 심어줘야 하는가, 부정의 이미지를 심어줘야 하는가는 어떤 모습을 골라야 하는 것에 달렸기에 신문사나 방송국의 카메라맨들은 수백 번도 더 샷터를 누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못생긴 사람도 웃는 순간을 포착하면 착한 산타 아저씨가 되고 아무리 예쁜 미스 코리아라 하더라도 어글리한 모습이 잡히는 순간이 포착되면 악녀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언론 매체가 이 기법이다. 살인마는 살인마의 인상을 하고 태어난 것처럼, 연말을 훈훈하게 하는 미담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천사인 것처럼 골라진 사진은 마법의 지팡이가 된다.

정권 초기 문재인의 모습은 아주 광채가 나고 잘생긴 미남 배우 뺨쳤다. 축 처진 일본의 아베보다도, 심술쟁이 트럼프보다도, 살찐 김정은보다도 훨씬 멋있게 한겨레뿐 아니라 조.중.동에도 잘받는 사진발로 나왔다. 언제부터인가 김정숙의 목젖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할 때부터 문재인도 늙기 시작했다. 각도를 살짝 위에서 잡아 듬성듬성한 머리와 피곤함이 연상되는 얼굴을 고른 것이다.

그것뿐인가, 트럼프에 못마땅한 국내 언론들은 심술궂은 트럼프와 착한 바이든을 사람들로 하여금 인식하도록 사진을 고른다. 최근에는 트럼프의 아들이 페이스북에 실은 '젊어진 아빠'를 켑처한 기사에서도 사진이 그거밖에 없으니 그냥 싣기만 하면 긍정적으로 보일까 봐 뽀샆을 의심케 하는 한 줄 기사를 덧붙이는 친절을 베풀어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가르치려 든다.

■ 9월 13일 자 조선일보 A3면, 가로 15센티, 세로 15센티가 더 돼 보이는 정사각형의 사진이 우측 상단에 큼지막하게 실리고 밑에는 "2018년 1월 국민의당 회의서 함께한 박지원과 조성은"을 적고 "1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회의에서 당시 국민의당 의원이었던 박지원 국정원장과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서로 쳐다보고 있다"고 썼다.

거기에 성에 안 찼는지 가까운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암시를 주는 기사로 "조 씨는 당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박 원장이 국민의당을 탈당할 때 함께 당을 떠났고, 이후 박 원장과 함께 민주평화당에 입당했다"고 부연했다.

기사만 보면 그냥 동료 정치인 두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진은 특별한 관계를 암시하는 글보다 더 찐한 장면을 클로즈업시키고 서로 간에 주고받는 시선까지 독자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 설명 없이 묵시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사람 사이 중앙에 찍힌 '뎃상'은 전혀 상관없는 모습으로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무덤덤한 조연의 모습이다.

주인공들, 앉아서 만면에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고 박지원을 쳐다보며 박수를 쳐주는 조성은에게 엉거주춤 선 자세로 연한 블루 와이셔츠에 보랏빛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로맨티시스트의 미소가 안경 너머로 부드럽게 흐르는 것을 카메라맨은 잡았고 편집국에서는 그걸 고른 것이다. '정치적 낭인'이 '정치적 수양녀'로 변모하는 과정의 해설 어디에도 부녀의 정을 인식케 하는 기사는 없다.

■ "불쑥 찾아오는 반가운 전화는 늘 설레게 한다. 넘 오랫동안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분이 불쑥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시니. 엄청난 반가움이 ♡" 정경심보다, 손혜원보다 꽃뱀같이 앙증스러운 그녀에게 "그게 나야" 자신만만한 박 원장의 댓글이 달려왔고 수양딸이 하는 말로는 들리지 않는 "대표님의 응원과 애정으로 무럭 무럭 자랍니당" 여기에서 잠깐, 카메라에 잡힌 두 사람의 눈빛을 보면 김춘수의 '꽃'은 저리가라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단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중략)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싶다(중략)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싶다' 의도에 맞지 않은 사진을 빼버리듯 중략해 본 '꽃'이다.

그녀는 고급 호텔 식당에서의 랑데부에 이어 '정치적 낭인'의 신분(?)이라면 가능할 국정원 원장의 공관 파티에서 '역사와 대화하는 순간들'을 즐긴 듯
페이스북에 정원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자랑했다. 실·국장들 같은 고위직 간부들을 제외하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사관급 이하는 공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근처에도 가보기 힘들다.

"박지원·조성은, 국정원장 공관서 함께 식사" 헤드라인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의미는 '카메라에 잡힌 금지된 눈빛'인가, 아니면 대선 유력 주자를 자빠뜨리려는 금지된 음모인가?

이제는 박지원이 답할 차례다.

2021년 9월 13일
"나는 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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