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신문은 조선, 중앙, 동아일보라는 소위 조중동이다.
이번 최순실게이트를 보면 모두가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시장경제의 덕분으로 돈을 번 재벌언론이라는 중앙일보가 왜
좌편향 되었는지가 의문이다.
중앙일보는 수년전부터 급격히
좌경화되면서 보수의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JTBC
손석희가 선동적인 오보를 하면서
정부를 계속 궁지로 몰았고, 최순실 테블릿pc를 폭로하면서 최순실게이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출처가 알려지지 않는 테블릿pc
보도 후 선동적인 언론이 집중적으로 가세하면서 박근혜대통령의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되고 정치적 생명은 경각에 달렸다.
정치꾼들은 거리로 나서 선동에 동참하고 마녀사냥을 벌이면서 전국을
번지는 미쳐버린 촛불집회가 한달넘게 계속되었다.대통령 탄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지겨운 최순실 이름이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결국 헌법을 수호하자는 보수층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맞불집회를 벌이면서 대한민국은 서서히 내란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주역중의 하나가 바로 중앙일보라는 언론사다.
중앙일보가 본격적으로 좌경화되기 시작한 것은 3년전이다.
2013년 중앙일보는 한겨레신문과 사설을 공유한다면서
좌익화(한겨레신문화)를 선언했다.
한겨레신문과 공동지면을 가진다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앙일보는
“가진 자
책무 일깨운 중앙, 약자 못 지킨 정부 비판한
한겨레”이라는 공동사설을 실었다. 그 후
사드배치 반대,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 죄파와 한 목소리를
냈다.
중앙일보는 좌경화 인사들로 채워지고, 반헌법적인 탄핵시국을 비판하던
김진 논설위원을 무슨 이유인지
내보냈다
중앙일보 좌편향의 아이콘은 JTBC 손석희
사장이다. 손석희의 좌편향 보도성향 여부를 떠나 손석희는 고용된 사장, 즉 하수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손석희의 뒤에는 그를 고용하고
조정하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있다.
왜 재벌언론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위협하는 좌경언론이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자면 홍석현의 행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중앙일보가 좌경화된 원인은
홍석현 회장의 방북과 연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별 언론사에서 제일 먼저 북한을
방문한 건 중앙일보다. 1998년 8월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은
누나인 홍라희 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그들은 8월21일 오전 베이징 행
아시아나항공에 오른 후 12시 30분경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 후 베이징에서 북한 순안공항으로
가는 고려항공을 탑승, 북한에 입국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북길에 나선 홍석현 회장 일행
언론사 대표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방북 길에 나선 홍사장은 대남민간교류 창구인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이종혁
부위원장을 비롯해 강덕서 노동신문사 주필대리, 박형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성철 김일성종합대학 부총장 등과 만났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1994년 5월 설치된 조선노동당 외곽단체이며,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인
통일전선부 산하
단체이다.
설립된 후 초기에는 대남사업을
담당하지 않고 주로 대미, 대일관계에 주력했으나,
1990년대
후반 현대의 대북사업을 중개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대남사업 주력기관이 되었다.
홍석현 사장 일행은 방북 기간
중 북측은 매우 융숭한 대접을 했다.
7박8일의 전 기간 동안
이종혁
부위원장이 동행하는 이례적인 환대를 받았다.
李부위원장은 6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洪사장 일행의 금강산과 묘향산
산행에까지 꼬박 따라 나섰다. 이러한 환대는 김정일의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이종혁
노동신문사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하고 평양시내의 중앙역사박물관.미술박물관. 인민대학습당.만수대창작사 등을 둘러보는 한편 대동문.연광정.을밀대 등 역사유적지를
둘러보고 금강산과 묘향산 여행을 했다.
홍사장은 8월 27일 노동신문사의 최고책임자
강덕서 주필대리와 만났고, 8월 28일 오후 5시부터 윤이상 음악연구소 접견실
및 서재동 초대소에서 진행된 '남북 언론인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홍석현 사장은 이 행사에는 박형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조정호 통일신보사 부사장,
이의민 중앙텔레비전방송 시사논평원과 회동을 하는 등 북한의 선전선동과 홍보를
맡은 주요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이들이 김정일과 만났다는 기록이나 보도는
없다. 북한의 철저한 비밀주의는 이
정도 만남을 얼마든지 은폐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묘향산 국제친선박물관에 홍석현이 김정일에게
선물했다는 보석 박힌 최고급 손목시계가 전시된 것으로 보아
분명히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방문 전 충분한 조율이 되었고,
많은 선물을 가져갔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리인을 통해 선물을
전달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1998년에 북한은 경제위기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만나지 않고 달랑 시계 한 개만 타인을 통해 선물하고 돌아
왔을 리도 없다.
한겨례 21 (1998.8.13. 제220호)에서는 홍라희 관장의 방북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홍 관장이 아무리 순수하게 문화적 목적을 위해 북에 간다하더라도, 그의 핸드백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로부너 2년 후인 2000년 8월, 당시 문광부장관인 박지원이
언론사 사장 46명을 대동하고 북한을
방문했다.
언론사 사장단 일행이 백두산
밀영이라는 곳을 방문한 8월10일, 북한의 한 간부가 금창태 중앙일보사
사장을 찾아와 “영도자께서 오늘이 선생의 생일이니 가서 축하해 주라고 하셨다”하면서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 주변에 있는 소백수 강변에서
금사장을 위한 생일축하연을 크게
열었다. 이를 보면 김정일은 홍회장을 만난 이후 중앙일보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김정일과 악수하는 금창태 중앙일보
사장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두고 여러 가지 합리적 의심을 할
수있다.
우리나라 재벌언론사 사장 남매가 북한을 갔을 때 영악한 김정일이
일상적인 교류방문정도로만 생각했을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은희와 신상옥까지 납치한 그가 어떤 목적을
가졌다면 수단과 방법을 다해 공작했을 것이 자명하다.
계모 김정숙과 숙부 김영주 등의 견제와 방해를 물리치고 김일성의
후계자가 된 후 결국 김일성의 권력마저 빼앗은 김정일이다. 그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온실에서 자란 홍석현 사장 정도를 7박8일 이라는 짧지 않는 기간을
이용하여 뗄 수없는 특별한 관계로 만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일 홍석현 사장이 자기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약점을 잡는 비열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 후 홍석현은 친북 좌파정부에서 주미대사까지 역임을 한다. 일설에 의하면
홍 회장은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사직과 함께 차기 UN 사무총장 후보 내정의 약속을 받고
2005년
2월
워싱턴에 부임했다고 한다. 2005년 7월 MBC가 ‘삼성X파일’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홍 회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홍석현 회장의 성향은 어떤 상태일까?
2016년 9월 22일 세계적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홍석현 회장의 기고문이
실렸다.
‘통일 한국의 출발점은 개성공단의 성공’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은 "개성공단 확장과
새
공단 건설, 통일로 가는 남북 윈윈 로드맵“이라는 주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장사정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을 수없는 안보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특히 2016년 9월 9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실시한지 불과 2주후,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는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할 수 있는 자금의 원천이 되었을 것으로
의심받는 개성공단을 확장시키자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이 결의를 하여 북한의 돈줄을 조임으로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시키려는 중차대한 시점에 언론사 회장이란 사람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적인
공조를 무시하고 북한에 퍼주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오래 전에 용도 폐기된
진부한 햇볕정책의 논리를 가지고 일반 국민의 생각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엉뚱한 주장을 하는 이면에는 무언가 북한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안 될 큰 약점이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