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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거인 리콴유 전 총리 타개..

새벽이슬1 2015. 3. 25. 01:33

'싱가포르의 기적' 만든 거인 떠나다…리콴유 전 총리, 23일 타개

 

 

 


	조선일보DB
조선일보DB



가난한 어촌 마을을 반세기만에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가 넘는 부강한 나라로 탈바꿈시킨 리콴유(李光耀·91)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23일 오전 3시 18분(한국시각 오전 4시18분) 폐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한국)·장제스(대만)·덩샤오핑(중국)과 함께 아시아의 도약을 이끈 1세대 창업형 지도자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리콴유는 독립 50주년(8월 9일)을 앞두고 영면했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날 오전 짧은 성명서를 통해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침통한 마음으로 리 초대총리가 오늘 새벽 입원 중이던 싱가포르종합병원에서 향년 91세로 편안하게 세상을 떴음을 전 국민들에게 알려드린다”고 발표했다. 총리실은 이어 “장례 일정은 별도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 총리실 홈페이지 캡처
싱가포르 총리실 홈페이지 캡처


그는 지난달 5일초부터 심한 폐렴 증세로 입원해 한 달 넘도록 치료를 받아왔다. 2008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심장박동조절기를 부착한 뒤에도 말초신경 장애, 뇌허혈 발작 등 각종 질병과 싸워왔다. 작년 11월 싱가포르 인민행동당 창당 60주년 행사를 끝으로 공식석상에서도 모습을 감췄다.

국부(國父)를 잃은 싱가포르 국민은 큰 슬픔에 빠졌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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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만든 인물’(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오늘날 싱가포르의 아버지’(존 메이저 영국 총리), ‘위대한 성공의 주역’(새뮤얼 헌팅턴)…. 싱가포르의 기적을 일군 리콴유에게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보낸 찬사다.

리콴유는 영국이 말레이반도를 통치하던 1923년 9월 16일 광둥성에서 이주한 화교 이민자 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 이름났던 그는 악착같이 공부해 명문 래플즈대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뒤이어 2차 대전이 터지고 일본군이 고향을 점령하자 그는 일본군 선전·정보부에서 번역 일을 하거나 고무풀 장사 등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일본 점령기 경험에 대해 “정부의 절대적 필요성을 깨달은 시기”라고 회고했다.

리콴유는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유학을 떠났고 런던 정경대·케임브리지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유학 시절 접했던 영국의 선진 문물과 학문 그리고 그 안에서 겪었던 아시아계 인종에 대한 차별 등의 경험으로 ‘고향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1950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노동 전문 변호사로 영국 측 사용자들과 아시아계 노동자들 사이 쟁의를 잇따라 타결시키면서 동족의 이익을 대변해야겠다는 열망을 가졌고, 1954년 창립한 ‘인민행동당’의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서른한 살 ‘정치인 리콴유’의 첫걸음이었다.

1959년 싱가포르가 자치권을 얻어낸 뒤 실시한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이 51석 중 43석을 휩쓸며 압승했고 리콴유는 이해 서른여섯 살에 싱가포르 첫 총리가 됐다. 그러나 곧장 시련이 닥쳤다. 1963년 국민투표를 통해 말레이 연방에 가입했지만 연방의 맹주 말레이시아와 충돌하다가 2년 만에 탈퇴했다. 이때부터 리콴유 정치 노선의 핵심 키워드로 꼽히는 실용주의가 빛을 발했다.

영국과 일본의 통치를 경험하고 유학까지 한 그는 특정 이념에 경도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그는 급진 반식민주의→온건 사회주의→강경 반공주의로 표변(豹變)하며 싱가포를 통치했다. 그는 자원빈국 싱가포르의 미래는 인재(人材)육성에 달렸다고 믿었다. 공직자 급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 공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강력한 반부패 정책으로 빈곤과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도시개발·교육 등에 서구 선진 시스템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외교에서는 싱가포르의 국가위상을 높이는데 힘썼다. 196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창설을 주도했고, 1972년 중국과 미국의 국교 정상화 교섭 때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자문역을 맡았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할때는 적극적인 조언자가 됐다. 31년간 싱가포르를 통치한 뒤 1990년 후임 고촉통에게 총리를 물려주고 퇴임했다.

그에게는 ‘독재자’라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사회 규율이 엄혹하고, 집회·결사 등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 리셴룽이 3대 총리로 취임하자 세습 논란도 있었다. 63년을 해로한 부인 콰걱추 여사와 2010년 사별한 뒤에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2013년 발간된 자서전에서 그는 ‘날마다 몸이 약해져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도 털어놨다. 2011년에는 미리 가족에게 “죽거든 지금 사는 집을 절대 기념관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헐어버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부국강병을 실현한 실용주의 정신은 유언에까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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