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가 끝났다. 역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 격렬했던 논쟁도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승자만이 우뚝 시민의 대표로 서게 된다.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진 시민들도 어느새 마음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주권자인 시민의 표로써 내린 결정은 아무도 되돌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다.
언론은 이 선거결과를 분석하고 온갖 의미를 부여하기 바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논어의 경구가 생각난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지나친 의미부여는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정치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이번 선거는 보궐선거였다.
일반적으로 보궐선거에서는 희망보다 심판이 표심을 좌우한다. 현실은 불만투성이다. 한나라당 정권이 무엇을 꼭 잘못했다는 것보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청년은 희망을 잃었고, 중산층은 붕괴의 공포에 떨고 있다. 심판이 내려지는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그래도 많은 표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를 보수에 대한 진보의 승리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진보세력이 극성을 부리던 노무현 정권에서 수많은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그러나 노 정권이 내세운 후보들은 거의 예외 없이 패배했다. 가치의 경쟁이 아니라 심판이 지배하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진보교육감과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를 상대로 무상급식 반대라는 가치투쟁을 벌이다 사퇴함으로써 이번 보궐선거가 있게 되었다. 한나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그 가치투쟁을 이어갈 인물을 시민후보로 밀었더라면 선거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시민들은 후보의 인물 됨됨이와 정책을 통해 표출되는 가치 중심으로 표심을 결정하고,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을 유보했을 터이니 말이다.
다음으로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였다.
국민들은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지방선거에서 정당 보다는 인물에 비중을 두고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의원 선거는 더욱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나라당이 내세운 후보의 인물경쟁력이 심판의 파도를 넘을 수 있었기 때문에 승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서울은 수도이지만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한, 재정 모두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서울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법률이 위임한 한도 안에서 의회가 제정한 조례를 집행하고, 세법이 정한 지방세를 재원으로 살림을 꾸려야 한다. 모자라는 재정은 중앙정부에 의존한다. 시민들을 위한 치안, 교육, 민생경제에 관하여 아무 권한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이 다른 지방자치 선진국에 비해 자신들의 자치를 반쪽자치라고 한다지만, 우리 지방자치는 반쪽자치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러므로 서울시장이 아주 큰 정치적 자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대통령으로 가는 발판으로서 서울시장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시장은 그저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행정조직을 잘 운영하는 지휘자여야 할 것이다. 시장에 당선된 사람은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 뛰어든 정당과 재야인사들의 장래를 놓고 여러 분석과 예측이 난무한다. 특히 내년 총선과 대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관해서는 전망이 분분하다.
나는 선거공학자가 아니어서 이론적 분석을 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번 선거와 내년 총선, 대선은 전혀 별개이다. 두 선거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를 상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앞으로 각 정당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지, 이리 저리 뛰어든 인사들이 어떤 운명을 겪게 될지, 그것은 그들의 결단과 국민의 마음이 만들어 낼 뿐,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세대별 투표성향이 달라졌고, 지역주의가 약화되었으며,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의 위력이 강해졌다는 분석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갑자기 나타난 변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다. 젊은이들이 가장 큰 고통에 직면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젊을수록 변화를 갈망하고, 그만큼 행동으로 심판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역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언젠가 극복되어야 할 과제이고, 온라인을 통한 소통과 연대는 거스를 수 없는 지식사회의 물결이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를 잊어야 한다. 선거에 드러난 민심을 수용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하면 될 것이다.
2011. 10. 27
이 인 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