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는 당선무효 등의 사유로 빈 자리를 충원하기 위해 치러지는 선거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곳은 3명의 국회의원선거와 한 곳의 도지사선거였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임기가 겨우 1년 남은 자리였다.
언론은 선거 전부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선거 결과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 바쁘다. 특히 패배한 정당은 큰 충격을 받고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등 혼란에 빠졌다. 총선이나 대통령선거 결과를 놓고 당이 체제를 전면쇄신하는 일은 그렇다 치고, 수시로 있는 보궐선거 때마다 당이 이렇게 요동치는 일은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큰 선거든 작은 선거든 거기에 나타난 민심이 엄중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당은 이를 겸허히 받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의 진정한 의미를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승부(勝負)에 졌으니 지도부는 책임지고 물러가라는 식이다.
큰 가마솥의 물은 쉽게 끓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냄비의 물은 약한 불에도 끓어 넘친다. 몇 몇 보궐선거 결과, 그것도 5% 안팎에서 갈린 승부를 놓고 하늘이 무너진 듯 절망하는 우리 정당의 모습이 작은 냄비를 연상시킨다면 무리일까. 부끄럽지만 이것이 오늘 우리 정당정치의 현주소이다.
나는 20년 넘게 이런 정치풍토에서 수많은 선거를 치러본 경험을 갖고 있다. 패배한 정당이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지도부를 속죄양(贖罪羊)으로 바치는 일은 이제 통과의례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통과의례를 통해 당의 내실(內實)이 혁신되어 국민의 공감을 얻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총선이나 대통령선거에서는 현 정권에 대한 심판과 다음 정권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궐선거에서는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역대 정권마다 보궐선거는 여당의 무덤이었다. 이번 보선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의 기대에 비추어 볼 때, 현실은 실망과 분노 그 자체이다. 실업악화, 중산층 붕괴, 물가상승, 전세대란과 부동산 시장 불안정으로 부글부글 끓는 민심에 설상가상으로 터진 저축은행 불법인출 사건이 기름을 부었다. 그밖에 주요 국책사업을 놓고 보여준 정권의 결단력 부족도 국민을 얼마나 실망시켰던가. 여당에서 볼 때 이번 선거 결과는 결코 의외가 아니라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 정당들은 형해화(形骸化)된 지 오래다. 정책을 개발하고 주도할 능력이 없다. 인물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지원할 의지도 없다.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반대하고, 표를 얻을만한 인물을 모셔오기 바쁘다. 아직도 지역이나 낡은 이데올로기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념이나 정책을 바탕으로 당의 정체성을 내세우기 어렵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여전히 40%를 넘나든다.
이번 선거는 내년 총선, 대선과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 그저 보궐선거일 뿐이다. 승리한 야당이 미래를 선점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패배한 여당 또한 지도부를 교체하는 등 인적 쇄신만으로 국민에 대한 도리를 다 했다고 판단하면 잘못이다. 여야 모두 진정한 정치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오늘 우리는 언제 어느 방향에서 어떤 충격이 밀어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개개인의 삶은 고단하고 불안정하다. 국민의 정치적 욕구는 넘치고 이를 충족시킬 수단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무리 역량 있는 정권이라도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현 정권, 그리고 다음 정권을 노리는 야당 모두 한없이 겸손해져야 한다. 국민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허세를 부릴 일이 아니라, 과학적인 정책으로 국민의 진정한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한번의 채찍질에 혼비백산하여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1. 4. 29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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