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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 신앙의 세계

[스크랩] 유대인의 때를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길

새벽이슬1 2010. 7. 11. 13:57

一. 유대인의 때를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길 

 

그러면 유태인의 때를 맞이한 한국교회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첫 째는 유태인을 위한 사역에 동참하고 이에 앞장을 서야 할 것이다.

유태인들은 한국인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메시아닉 쥬 형제 자매들은 한국교회가 이 일에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놀랍게도 오래 전(일제 시)에 이미 우리 한국교회는 유태인을 돕도록 주께서 섭리하시고 계획하셨으며 우리 한국교회를 유태인들을 위한 사역자로 부르셨으며 예비하셨다는 사실이다.  


당시는 한국교회는 죽어있는 상황이었고 유태인 역시 말라 버린 무화과 나무요(마21:19) 에스겔 골짜기의 뼈다귀(겔37:1-2)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러한 소망과 비전을 주셨다는 것은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로 해방 전 주께서 유태인과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계획과 비밀을 일본에서 사역하시던 김치선 목사님(대한신학교 창설자로서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칭함을 받으시던 분)과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셨던 한경직 목사님을 통해 전해 주셨다는 것이다. 김치선 목사님은 기도 중에 주님이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며 한경직 목사님의 경우는 어느날 성경적이고 열정적인 전도자(크리스천 시온운동 주의자)를 하나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한목사님께 유대인에 대한 성경적인 결론과 소망을 열심을 다해 전해 주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도 가감하지 않은 사실이며 일본에서 유대인 세미나 관계로 김세창 목사를 만났을 때 김세창 목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이야기지만 김세창 목사는 일본에서 해방 전에 출생하여 대한신학교 학장과 대신측 총회장을 지낸 분으로 그 분의 선친이 바로 김치선 목사님이시다.


김치선 목사님은 당시 일본에서 목회를 하시고 있었는데 그 때 기도 중 주께서 김 박사님께 이스라엘의 비전과 조선의 장래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목사님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당시에는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않는 조선이며 또한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에 해방을 맞고 귀국하여 조국의 해방과 이스라엘이 건국에 대한 것을 깨닫고 그 때야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로부터 받았던 모든 계시적인 내용을 자제분인 김세창 박사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 후 주께서는 김치선 목사님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것까지 보고 소천케 하심으로 그의 연약한 믿음과 불순종에 대하여 분명한 사실을 인식하게 하신 후(1967년 예루살렘의 회복) 데려가셨다(1969년). 
김치선 박사님께서 소천하신 이후 김세창 박사는 부친의 뜻을 받들어 미국에서 유태인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에피소드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본인이 전에 '92한유태인연합금식성회를 진행해 나갈 때 한경직 목사님을 모시기 위하여, 남한산성 자택으로 방문을 한 바가 있다.

당시에 인천 내리감리교회에서 담임하시던  이복희(바울) 감독님과 박영덕 장로님 등과  한경직 목사님을 방문하였는데 그 때 목사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공부하실 때부터 이미 주께서는 한경직 목사님을 한국교회의 최고지도자로 기름 부으시고자 작정하셨던 것이다. 그 어른께서 부족한 어린 후학의 편지를 받으시고 왜 까마득한 후학인 이 사람에게 잘 못했다고 그렇게 정중히 용서를 구해야만 했던 이유를 그 때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의 회개해야만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에피소드를 조금 더 부언하자면,

 부족한 사람이 유대인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던 중 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모 장로님과 조직을 의논하던 중 한경직 목사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님을 모시고자 하여 남한산성에 전화를 드렸더니 전화를 받으신 분이 편지를 보내라고 하여 이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깨끗이 잊어버리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어느날 일찍 잠에서 깨어났는데 다시 잠을 청하였으나 잠은 안 오고 한경직 목사님께 편지를 드려야한다는 생각만 계속 나를 억압하고 사로잡아 잠을 못 자도록 하였다. 

그러나 나는 처음 이것이 성령의 음성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잠을 청하였으나 한경직 목사님께 편지를 드려야 한다는 강력한 사로잡힘에 억지로 이끌리어 마지못하여 그러니까 그냥 잠이 오지 않아 심심풀이로 한경직 목사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보시지 않을 것이 뻔하니까 한목사님께 대한 예우를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서 깨알같은 글씨로 신학적인 문제에서 그들이 성경의 에언에 따라 받은 고난, 그리고 역사 속에서 받은 고난에 대하여 쓰기 시작하여 우리 한국교회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하여 쓰다보니 새벽에까지 이르렀으며 또한 쓰다보니 대학노트 10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었다.

그리고 이왕에 편지를 썼으니 그냥 버리기도 무엇하고 그냥 편지를 부쳤다. 

또한 편지를 부치고 그냥 잊어버렸다. 당시 나의 판단으로는 누가 그러한 장문의 편지를 볼 것이며 또한 90노인이 깨알같은 글씨를 보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지를 부친 후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당시 유대인을 위한 기도회가 동부이촌동에 있었기 때문에 김종배 집사님 댁이었던가 하였튼 지금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곳에서 기도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 그날이 되어 나는 그 기도회에 참여하기 위해 방을 막 나서던 찰나였다. 그 때 갑자기 고요했던 방안에 정적을 깨뜨리며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다시 방으로 돌진하듯 달려가 황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놀랍게도 한경직 목사님댁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경직 목사님의 조카되시는  권사님이셨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이 잠시 멍해졌다.  다시 전화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조카되시는 권사님께서 전화를 바꾸겠다고 한다. 잠시 후 한목사님의 음성이 전화선을 통하여 들려 왔다. 그 어른의 특유의 느리고 점잖으시고 나직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평안도 말씨는 분명히 한경직 목사님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 한경직 목사외다" "나 편지를 다 읽었습네다" "미안 합네다, 우리 한국교회가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만 거기까지는 신경이 가지 못했습네다. 미안합네다" 나는 더욱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아니 저 어른이 나에게 무엇이 미안하다고 쩔쩔 매시나? 그리고 나는 교계에 전혀 알려진 얼굴이 아니고 네임벨류도 없는 무명이나 진배가 없는데... 그리고 그 편지를 다 읽으셨단 말인가? 그럴 줄 알았으면 글씨나 크게 쓸걸... 너무나 죄송스럽구나! 순간 내 마음이 감사와 죄송스러움으로 요동치며 어느덧 코 끝이 찡해지고 눈이 시큰거리더니 눈물이 내 코와 뼘을 타고 내려왔다.  

그러는 사이, 한목사님의 인자하나 어린애처럼 흥분하시고 계신 목소리가 수화기를 계속적으로 울렸다.  "목사님, 내가 우리 총무에게 전화 놓을터니까  총무를 한 번 만나세요. 그리고 신문(기독공보) 그 무어더라? "잘 생각이 나시지 않는 모양이셨다. "그리고 그 신문, 무어더라! 거기에 내게 보낸 내용을 연재 한 번 해보세요. 나는 우리 증경총회장들의 모임이 얼마 후에 있는데 거기서 이 얘기를 할 것이외다!"

나는 너무나 놀랍고 고마우신 처사에 몸 둘바를 몰랐다. 다만 예 목사님, 예 목사님 할 뿐이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냥 흘려버릴 뿐이었다.

 

누가 그 90 노인을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게 하신 것일까? 그 누가 감히 점잖기 짝이 없으신 그 어른을 그렇게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만드신 것일까? 그 누가 한국교회의 얼굴이신 그 어른을 보잘 것조차 없는 내 앞에 쩔쩔매게 하신 것일까?  이것은 저 위에 계신 전능하신 분이 아니시면 상상도 못할 노릇이며 이는 오직 그분의 유일하신 작품으로서 그 분만의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이다.

주께서 한경직 목사님을 미국으로 부르시고 그 곳의 형제를 통하여 메시지를 주셨는데 그 때까지 한목사님은 이를 잊고 계시다가 주님의 강권하심에 따라 내 편지를 강제적으로 읽으시게 되었으며 이를 보시고 과거 주께서 당신께 역사하신 장면을 회상케 하시고 회개토록 하신 것이다.

그것이 그 분을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게 하셨으며 또한 주님께 회개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사과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물론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주님의 계획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와 같은 사연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일로 미루어 볼 때 주께서는 이미 일제 당시에 김치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을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기름 부으시고 유대사역을 원하셨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 칼 귀츨라프와 알렉산더 피터스를 볼 때 그리고 이스라엘의 획복을 위한 알리야 운동을 볼 때 이러한 계획과 섭리는 이미 오래전에 계획하시고 섭리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두 분께서는 후에 한국교회의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오르셨지만 신사참배에 대한 데미지와 부담감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유대인 사랑에 대한 사역을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또한 그 일을 외면하심으로 그 일을 그 후대에 맡기신 것이라 본다.  

 

후에 성령님으로 인하여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사단은 한국교회가 받은 사명에 대하여 질투하고 미워하여 이를 훼방하기 위해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라는 악재를 들여왔으며 이러한 배도행위로 인하여 한국교회로부터 유대인사랑운동에 대한 사역을 빼앗고자 했다. 그리고 참으로 애석하게도 우리 조선교회는 넘어지고 말개 된 것이다. 주님의 뜻으로 미루어 보건데 사단의 이러한 행위는 사명을 받고 또한 장차 한국교회를 유대인사랑운도으올 이끄실 두 분이신  한경직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을 겨냥한 것으로 두 분 목사님을 넘어뜨리고 사명을 빼앗음으로 한국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한 목사님께서 그 때 생면부지의 어린 후학에게 코가 땅에 닿을 듯이 사과한 것은 바로 때 늦은 후회로서 주님께 대한 용서와 사죄였던 것이라는 감이다. 그러나 어쨌든 주께서는 이를 잊지 않으셨으며 만삭되지 못한 자 죄인 중의 괴인 같은 자 등을 부르시고 일깨우셔서 이를 알게 하시고 또한 한경직 목사님을 깨우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주위사람들을 통하여 목사님께 늙으심을 내 세우게 하여 목사님께서는 연약한 모습으로 일관하게 하였으며 부족한 사람도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 오산리기도원에서 개최키로 한 한유대인연합성회가 무산됨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었는데 그 후 필자가 캐나다에 가 있을 동안 한 목사님도 알치하이머에 시달리시다가 결국은 소천하시고야 말았다. 유대인 사역 사역이 사역이니 만큼 마귀의 훼방과 역사가 집요한데 이를 방심했던 것이 결국은 낭패를 보았던 바 유대인 사역자라면 누구라도 이는 경성하고 귀담아 들어야 할 항목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주께서 마지막 때에 그리고 역사이래 일찍이 없었던 사역인 유대인복음화에 앞장을 서야 하며 주께서 주신 복인 아브라함의 복(창12:3, 민24:9)을 겸허히 받아서 이에 대한 수행에 혼신의 열정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유대인의 때를 맞아 한국교회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첫 째로 지금은 유태인의 구원의 때이며 유대인의 고토 귀환의 시대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선 유대인에 대한 사역에 힘을 쓸 것이다.

 

1.  디아스포라 유태인의 본토 귀환을 위해 기도하며 또한 이들이 본토 귀환하는데 물질로서 도와야 할 것이다. 특히 동구의 가난한 유태인들과 아프리카의 유태인들이 본토 귀환하는데 힘써 도와야 할 것이다. 즉 Exodus Operation(제2의 출애굽작전)에 동참하는 것이다. 


2. 유태인의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 사역과 유태인권 복음화 사역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3. 디아스포라 유태인 지역을 위한 사역을 통하여 선진 문명권에서 고토귀환을 망서리는 유대인들의 본토 귀환 작전을 펴야 한다는 뜻이다.

 

3. 그 다음 디아스포라 유태인들을 복음화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심령의 황폐화 사막화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사단과 그 하수인인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폐하고자 하며 거룩하심을 훼방하며 복음을 훼방해 왔다.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에 대한 것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빼앗고 이를 모욕함으로 복음을 대적하며 이는 훼방하려는 것이다.

오늘의 적그리스도 세력들인 자유주의추종자들과 진화론자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땅으로 끌어내어 세상에 더 이상 복음이 확산되려는 것을 막고자 발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하며 이을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깊이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파일로 올려 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페이지는 모두에게 공개하고 있는 소개 페이지이기 때문에 생략함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셋째로 무궁화의 후손들인 이 민족에게 무궁화 복음선교운동을 펼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민족복음화 운동에 매진하는 것이다.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유대인의 때임를 부정할 수 없다. 그 것은 저주받아 뿌리까지 말라버렸던 무화과 나무가 소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잎의 무성함과 더불어 열매가 맺혀 주께서 그렇게 고대하시던 열매를 따 잡숫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이를 유념해야 할 것이다. 즉 추수기인 여름(렘8:20)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성경은 저들의 받아들이는 때가 이르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 즉 죽은 자는 물론 산자의 부활인 대부활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롬11:15).

따라서 우리 민족에 대한 복음이 더 긴박해졌으며 절실해 졌다. 이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 따라서 이제 민족복음화운동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교회가 유대인의 때를 인식할 때 주께서 복으로 주실 것이다. 따라서 이제 민족복음화의  책임 역시 유대인의 때를 깨달은 사람들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할 줄 안다. 이는 진정한 때를 알게 된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때를 아는 자만이 긴박감을 갖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The Rose of Sharon(무궁화, 메시야의 꽃)에서 그 당위성을 찾아야 할 줄 안다.

 

무궁화는 우리의 건국 이래 우리의 꽃이었다. 그 무궁화의 원산지는 학명(Hibiscus syriacus)이 말해 주듯이 중동 땅 시리아이다.

지금도 시리아 왕궁이었던 다마스커스국립박물관 정문에 대한민국 대통령 휘장과 같은 문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이의 연대는 기원 2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무궁화는 환화(환국의 꽃, 앗수르의 꽃 ←아수 ; 밝음→밝달 배달  곰 → 단군신화) 또는 천지화(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꽃, 메시야의 꽃)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의 건국시대부터 전래되어 온 것으로 이는 우리 민족이 시리아 지역에서 아라랏산을 넘고 우랄 산맥과 알타이 산맥(우랄 알타이어족 교착어 사용 S+O+V) 거쳐 시베리아를 거쳐 이주 해 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메시아의 꽃인 무궁화에 대해 창조사학회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민족기원대탐사를 통하여 입증한 바가 있다.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꽃이다. 여기에 무궁화에 대한 글을 올려 놓았데 이를 보면 무궁화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닮았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메시아의 꽃을 사랑하는 이 백성이 메시아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우리 민족은 옛부터 예수를 믿게끔 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거듭남)로 이미 주께서 섭리한 백성이다라는데서 자부와 긍지를 느껴보시기 바란다.

 

넷째로 우리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 일찌기 배도를 한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 빚은 청산되지 않은 채 지금껏 내려왔다.

 

하나님께 인간이 범죄하였을 때 주께서는 결코 그 것이 청산되지 않았을 때는 결코 이는 용서하시지 않으며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짐승들이 죽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빚을 다 청산하시지 않았던가? 따라서 빚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주께서 이 민족과 이 땅에 복을 주시기 위하여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아침 아펜젤러 언더우드 두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상륙시키시고 이 땅에 복음을 심으셨다. 그러나 사단도 이를 훼방하기 위하여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 신학을 심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곡식이 심기어질 때 동시에 가라지가 함께 뿌려졌으며 떡과 더불어 누룩이 함께 퍼지게 된 것이다(가라지 ; 마13:25. 누룩 ; 출12:15,12:19 레2:5,11 신16:4 겔45:21 암4:5 마16:6 막8:15 눅12:1 고전5:6-8 갈5:9 참조).

 

그런데 그 것이 표면에 드러난 것은 1909년 황해도 해주에서 암약하고 있던 공위량(William C. Kerr, 孔偉良)의 가르침을 받은 이단자 김정호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성경의 이적과 표적을 부인하고 모세의 홍해를 간조의 현상으로 보았으며 오병이어의 기적 역시 도시락으로 해석하였다.

그 이후 이에 대한 미선교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포용주의적인 태도는 결과적으로 이 땅에 복음주의 신학과 이단신학이 공존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1920년대에 일본, 미국 등에 유학하여 자유주의자가 되어 돌아온 김재준 송창근 채필근 등으로 하여금 만용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드디어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 보던 이들에 의하여 이 땅에는 자유주의 사상, 이단신학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4년에는 김춘배 김영주 등에 의해서 공개적으로 진보적 신학입장을 발표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결국 이단자들과 배신자들은 1938년 9월 9~10일에 걸쳐 개최되어진 장로교 제27차 총회로 신사참배를 결의하게 하였으며 평양신학교를 문 닫고 복음적 성경주의 신학자들이 사라지게 한 후 완전히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이에 대하여 성경적인 청산을 하지 않았다. 바벨론 포로에 대한 주께서 물으신 이스라엘의 책임은 70년 동안 안식년을 지키지 않은 것이었다(대하36:21, 렘25:11-12, 29:10 단9:2 ). 그래서 강제적으로 토지에 대한 안식년을 압제하신 것이다.

 

70년의 바베론 메데 바사의 복역 기간에 대하여 주께서는 이를 참조하여 이스라엘의 영속을 약속하셨으며 또한 예슈아 마쉬아흐의 도래를 약속하고 계심을 본다. 70이레를 통하여 이를 작정하시고 예수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과  또한 마지막 때의 이스라엘에 잠시 동안의 평화, 즉 한 이레(사망과의 언약, 거짓언약의 7년 사28:15,18)와 마쉬아흐(유대 왕,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을 섭리하고 계심을 본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인다면 7년 환란은 다니엘서의 70이레 중 69이레가 기름부은(마쉬아흐) 분이신 예슈아의 십자가 사건이래 남은 한 이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한 이레인 7년만 남았는데 이것이 이른 바 7년 환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일명 야곱의 환란(렘 30:7 참조)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마 24:21을 근거로 들어 이를 교회의 환난으로 보는데 이는 유대인들을 위해 쓰여진 마태복음이라는 것을 도외시 연고이다. 따라서 이 환난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환난이며 교회(거듭난 유대인 + 이방인)은 이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들림은 교회가 완성되면(엡 2:11-22) 되고 신부가 결혼준비를 마치면 교회가 함께 하시던 성령께서 다시 오라가실 터인데 교회가 완성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면 교회와 함께 승천하시게 되는 것이다(살후 27-8 참조).  

 

각설하고 어쨌든 주께서는 분명 70년 토지안식년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강제적인 토지안식년으로 갚게 하셔서서 이스라엘을 유대 땅에서 쫓아내심으로 강제로 토지가 안식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 회복을 다니엘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신 것이다. 다니엘을 택하신 것은 다니엘은 70년의 범죄에 참여하지 않은 소년이었으며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기도(중보, 회개)하게 하신 것이다(단9:2~27).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이러한 고백과 기도를 주께 드리고 있음을 보는데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애가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신사참배에 대한 씻음은 배도에 참여하지 않은 의로운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야 했다. 그러므로 해방후 출옥성도들은 다니엘과 예레미야의 본을 받아 이를 자신의 죄로 인식하여 중보와 회개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출옥성도들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신사참배자들을 향하여 회개를 강요하였다. 과거 역사 가운데 도나티즘이 한국교회에 재현된 것이다.

그러자 여기에 반발한 세력들과 알력이 생겨 결국에는 분열로 이어잔 것인데 이것이 우리나라 교회 분렬의 시작이엇던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분열은 신사참배 때문에 생긴 것이며 또한 국토분단과 국가분열 역시 신사참배의 결과 저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왕상11:6-13).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윗을 생각하사 2지파를 남기셨고 솔로몬 당대에 분열 될 것인데 다윗을 생각하신 주께서 아들 대로 이를 연기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역시 배도에 의한 저주로 망할 터인데 순교자들의 피를 생각하신 주께서 남쪽 만이라도 남기셔서 지탱하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 역시 이스라엘 왕국이 배도에 의하여 남북으로 갈라졌듯이 남북은 갈라질 수 밖에 없었으며 평양은 저주의 도시요 귀신의 아지트로 변모되어진 것이다. 평양은 과거 타므스 즈메인 로밧 선교사의 피가 서린 복된 땅으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칭함을 받았으나 또 그 평양 땅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함으로서 저주의 땅이 되었으며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깨달으면 그 것이 복이다. 이제라도 신사참배와 배도에 참여하지 않은 세대 또는 그러한 무리가 이를 대신 중보 하며 회개해야 하면 주님과의 관계는 정상으로 정립될 것이다.  지금까지 주께서 주신 은혜는 휘장 가운데 뚫어진 구멍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에 불과한 것이었다. 구멍의 은혜가 지금까지 은혜였다면 휘장이 또는 장막이 막힌 담이 거두어진 상태의 은혜는 얼마이겠는가?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이제 주께서 오시기 임박한 이 때에 이러한 문제들을 청산하고 또한 지금까지 있어 온 한국교회의 문제를 한꺼번에 청산함으로서 주님의 긍휼과 용서를 입고 은혜와 사랑을 덧 입어서 다시 한 번 부흥과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대 전기를 마련하여야 하고 주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고 요시야적인 개혁을 완수하여야 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

 

한국교회 교역자 성도 여러분! 조금 길어진 감이 있지만 이상 유태인의 때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한국교회는 맞아야 할까 하는 이 시대의 교회의 자세를 언급해 보았습니다.

 

이에 자세한 내용이 수록된 문서들을 공개하고 이를 함께 sharing 하기를 원하오니 많이 참여하여주시고 함께 이 시대를 풀어나가는데 동참하여 주시기를 상천하지에 거룩하심과 영화로우심이 오직 유일하시며 만군의 주 여호와 만왕의 왕되신(사42:13-14, 44: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고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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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파아란홈
글쓴이 : kingjosiah4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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