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자 ! 대한민국!
이북(以北)이 나의 조국...빨리 공산주의 하겠다 본문
"이북(以北)이 나의 조국...빨리 공산주의 하겠다 강희남 목사의 발언들,.. 그를 떠받드는 한국의 기자들!
|
인터넷을 켜면 자살한 강희남 목사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들어온다. 소위 평화운동, 통일운동에 매진해 온 姜목사를 추모하는 컨텐츠들이다. 철부지 시민들의 부화뇌동(附和雷同)은 그렇다고 치고, 언론의 보도는 악질적이다. 대한민국 기자들은 지금 공산주의를 선동하고 있는가? 강희남 목사의 경력과 발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이북에서만 민족의 정통성이 있음으로 나의 조국>
『제국주의 양키들은 자기들이 우리 민족을 일본에서 식민지 노예 신분 그대로 인계받은 양 이 땅을 식민지(植民地)화했던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이유로 하여 나는 이남(以南)에서는 도저히 민족의 정통성을 찾을 수가 없고 이북(以北)에서만 민족의 정통성이 있음으로 이북(以北)을 나의 조국으로 알고 믿는 바이다...자본주의를, 그렇게 못된 짓을 하는 제국주의 양키들이나 이남(以南)이 한다면 하루속히 이를 버려야 하겠고 또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그렇게 훌륭한 민족정통성을 지키는 나의 조국 이북(以北)이 한다면 나는 제백사하고 빨리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하겠다.』 2007년 12월17일 기고문)
2. <金위원장께서는 80%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아집니다.>
『김정일 위원장님께 드립니다. 이번 6자 회담을 계기로 양키 제국주의자들의 핵 포기 후 평화협정 운운하는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핵 포기는 바로 주권 포기와 맞먹는 일입니다. 지금은 핵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이제 김 위원장께서는 80%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아집니다.』(인터네셔널 2006년 12월2일 기고)
3. <양키들에게 짐승처럼 길들여진 짐승>
『이 강토에 38선을 그어놓고 우리 민족을 양단시켜 적대시하게 만들었고 또 한국전쟁을 일으켜 국권을 저당잡고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수탈하지 않는 것이 없는 양키들에게 60여 년 동안 길들여진 짐승처럼 민족이 무엇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불상한 남쪽 백성을 보고서 우리 조상 선열들이 지하에서 통곡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인터네셔널 2006년 7월19일 기고문)
4. <김일성(金日成)의 영생(永生)주의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金日成 수령의 「永生주의」이며 또 金正日 위원장의 「先軍정치」 리념이다. 북조선이 약하고 가난한 나라로 보이지만 그들이 세계 최강 아메리카와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신력에 의한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미사일과 核은 그들의 정신력의 상징물이다. 核은 주권이다. 남조선과 달리 북조선은 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권국가로 유지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金日成 주석의 「永生주의」와 金正日 위원장의「先軍정치」 리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2004년 8월10일 「COREA」기고문)
5. <이북(以北) 내 조국이 핵을 가지면 가질수록>
『현재 패권주의(覇權主義) 세계에서는 핵(核)무기가 말을 한다. 핵(核)이 없으면 주권도 지킬 수 없다. 核은 주권이다. 이북(以北) 내 조국이 핵(核)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양키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다. 그 밖에는 방법이 없다.』 (2004년 7월29일 「COREA」, 「민족통신」 등에 기고한 「탈북자 소감」)
6. <맥아더 동상 파괴 주도>
親北단체 「전국연합」,「통일연대」의 상임고문과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한 강희남 목사는 2005년 맥아더동상파괴 집회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5년 5월10일 「양키추방공동대책위(이하 양키추방委)」라는 단체를 만들어 『美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맥아더동상을 7월17일에 끌어 내리겠다』며 자유공원 등 인천 각지를 돌며 천막농성을 벌였었다. 姜목사를 대표로 한 양키추방委는 산하에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이하 련방통추)」,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이하 주미철본) 등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통일뉴스」 2005년 5월19일 보도에 따르면, 강 목사는 맥아더 동상 철거 이유에 대해 『6.25 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었다.
7. <北에 조문(弔問)간다, 길 비켜라>
강희남 목사는 5·16 혁명 당시 주민증을 찢은 뒤 40년간 참정권을 포기했다가 2002년 대선(大選) 당시 『이번만큼은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며 주민증을 다시 만들었다. 그는 1994년 김일성(金日成) 사망 시(時) 「북(北)에 조문(弔問)간다, 길 비켜라」는 글을 들고 조문을 강행하다 문산 근방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북한은 강희남 목사가 초대의장을 맡았던 범민련을 애국(愛國)조직이라고 칭한다. 평양방송은 2005년 11월20일 범민련 결성 15주년을 맞아 『범민련은 애국(愛國)통일운동조직』이라고 격찬하면서 『범민련이 결성됨으로써 해내외 모든 통일애국 역량은 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굳게 뭉칠 수 있게 됐다』며 『북과 남, 해외에서 분산적으로 진행되던 통일운동이 하나의 조직적인 기반 위에서 더욱 활력 있게 진행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었다.
김성욱 기자 |
'시사-논평-성명서-칼럼.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기총 성명서 발표-국민화합,경제대국 (0) | 2009.06.17 |
---|---|
노무현은 의문사라는 생각이 든다! (0) | 2009.06.15 |
서울대교수124명 시국선언 조목조목 반박 (0) | 2009.06.13 |
<시국성명서> -서경석목사 (0) | 2009.06.10 |
'시국선언’은 유행이 아니다 (0) | 2009.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