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한 시간 반이 넘게 공연을 이끄는 지휘자 로린마젤이 하필이면 1532년 잉카제국을 멸망
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Pizarro, Francisco)를 연상 시키는 이유는 뭘까? 피사로는 총과
성경을 앞세우고 잉카의 수도 코쿠스를 침입해 단번에 우리의 동족들이 세운 잉카를 멸망시
켰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며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그렇게 철 저한 사상교육을 받은 세대들과 한국전쟁 때 미군을 향해 총질을 해 대던 역전의 용사들이
평양의 대공연장에서 한 자리에 모여 파란 눈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률을 감상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무척 궁금하다.
106명의 단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화음을 만들어 내는 장면에 평양의 시민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평양주재 외교관들이 박수를 유도하자 마지못해 눈치를 보면서 박수를 치는 장면에 괜히 마음이 아팠다. 악단 우측에는 인공기가 좌측에는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었는
데 뭔가 어색해 보였고 60년만의 화해의 제스처가 너무 경직되어 보였다.
연주하는 푸른 눈이나 금속성 음률을 감상하는 관객들 사이에 해 묵은 망각의 강이 자리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후반에 아리랑이 연주되면서 공연장 분위기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듯 했고 신명난 지휘자는 평양시민들에게 세 곡을 더 선사했으며, 공연이 끝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한참 동안 박수를 쳤다.
우리는 1971 미국의 대 중국 핑퐁외교를 기억하고 있다. 탁구공에 이어 코카 콜라와 미국 자본이 죽의 장막을 걷어냈고 중국공산당이 정권 수립이후 20년간 단절되었던 미-중간 외교가 재개 되었으며, 20년 만에 중국은 긴 잠에서 깨어나 경제대국이 된 사실도 우리는 지근에서 보아왔다. 오늘 “뉴욕 필하모닉 2008 평양“ 공연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향후 전개 될 미국과 북한, 우리와 북한간의 화해 무드를 조용히 기대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것이다. 필자 또한 평양을 가 볼 날이 훨씬 앞당겨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천 년간 인동(忍冬)의 혹한 세월을 몸소 견뎌내고 있는 평양이다. 한때 아사달, 평양, 서경(西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온 평양이 오늘은 낯설지가 않다. 금강산이나 개성 처럼 평양도 강 건너 마을처럼 다가올 테고, 수많은 서울의 행락객들이 탄 차들이 평양으로
향할 것이다. 미국이 정치력으로 하다하다 안되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악공들을 평양에 들여
보내 양키문화를 침투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얄팍한 속셈이라면 로린마젤이나 프란시
스코 피사로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오늘 뉴욕필하모니의 공연을 보면서 베이징의 음흉한
위정자들은 또 무슨 꼼수를 노리고 있을지 불안하다. 여차하면 그들은 조중상호안보조약
(朝中相互安保條約)을 들먹이며 한수(漢水) 이북을 중국의 한 자치주나 성(省) 쯤으로 편
입시킬 생각에 억지를 부려가며 고구려가 한때 당(唐)의 변방 정권이라는 정신나간 주장을
펼치며 하늘을 속이고 있다.
뉴욕 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미국이나 중국 여타 소위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
의 줄줄이 이어질 문화침탈을 위한 선전포고라면 우리는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2008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많은 굴뚝을 세우고 황사를 수출한
다면 우리는 대륙과 열도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불쌍한 신세가 될 수 있다. 대학졸업한
지 3년이 넘은 조카가 있다. 그 아이가 직장을 못 잡고 서울의 밤 거리를 방황하는 이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