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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의 세계

데뷔 30년 전국 투어 인순이

새벽이슬1 2007. 4. 27. 23:09
  • “살아남겠다고 이 악문 30년 앞으로 30년도 그럴 겁니다”
  • 데뷔 30년 전국투어 인순이
       ‘희자매’로 78년 데뷔 “무대에선 ‘난 여자다’ 한가지 생각만하죠”
  • 글=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사진=오종찬 객원기자 ojc@chosun.com 
                                                                                                                        2007.04.25 06:36
    • 가수 인순이(48)의 30년은 “이 판에서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오기’가 전부였다. 앞으로 30년도 마찬가지. “살아있는 한, 언제나 핫팬츠를 입고 무대를 뛰어다니겠다”고 소리치는 그의 호언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정상(頂上)의 환희와 전락(轉落)의 고통을 공평하게 경험한 그는 ‘잡초’처럼 옹골찬 생명력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 대표 여가수로 서 있다. 데뷔 30년째를 맞아 전국 투어를 벌이고 있는 그를 만났다. 몸에 딱 붙는 검은 정장 틈으로 군살의 흔적이 없다. “사실, 30년 내내 전국 투어를 해왔다”며 말문을 열자 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세월이 성큼 다가선다.

      “요즘은 규모가 커지고 화려해졌지만 저 70~80년대에도 리사이틀이란 이름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공연해왔어요. 한번 시작하면 두 달간 하루 4회씩 공연을 했으니 대단했죠. 아기자기한 추억이 많아요.”

      천안, 성남 공연을 매진시킨 뒤, 5월 12일 서울 올림픽 공원 체조 경기장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거위의 꿈’ 전주만 나오면 관객들이 일제히 합창을 해주는데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이적과 김동률의 카니발이 97년 발표한 ‘거위의 꿈’은 올해 초 인순이가 디지털 싱글로 리메이크해 발표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진행형’ 인기 가요가 됐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인순이 팬들이 되살려냈다. 인순이가 콘서트와 TV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감명 받은 팬들이 인터넷에 인순이판 ‘거위의 꿈’ 파일을 대량 ‘유포’하자, 아예 인순이가 정식으로 녹음해 세상에 내놓았다.


    • “요즘 제 콘서트는 이 노래로 마무리돼요. 희망이란 단어가 메마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을 촉촉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요. 그 전에는 ‘아껴둔 사랑을 위해(이주원)’를 불렀는데….”

      “그 노래는 또 왜요?”라고 묻자 씩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사연이 좀 있죠. 93년 여름이었을 거예요. 제 남편이 저한테 청혼했을 때, 제가 그 자리에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거든요. 정말 괜찮은 남자인데 놓치기는 싫었고…. 그러다 당시 이종환씨가 진행하던 MBC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마포의 박씨 아저씨한테 바칩니다’라며 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남편은 그 방송 끝나자마자 ‘정말 정말 사랑한다’고 저한테 뛰어왔죠.”

      인순이는 78년 여성 중창그룹 ‘희자매’ 일원으로 데뷔하자마자 ‘벼락 인기’의 주인공이 됐다. 첫 앨범 수록곡 ‘실버들’은 TBC ‘인기가요 베스트 7’에서 7주간 1위를 차지했고, 1년 내내 각종 가요 순위 상위권을 지켰다. “훤칠한 여자 셋이 춤과 노래 모두 제대로였으니까요.” 그는 “군 부대에 우리가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입고 뜨면 그날은 끝이었다”며 쿡쿡 웃었다. 솔로 데뷔 후에도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방송과 대중의 외면 속에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하며 번 돈으로 전속 밴드와 무용팀(리듬터치)을 꾸려 낮에 놀이공원, 군부대 등으로 팬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실전 트레이닝이 최고”라는 생각이었다. KBS ‘열린 음악회’를 통해 인순이의 재발견이 이뤄지기까지 10여년의 세월을 그는 그렇게 보냈고 이는 재도약의 발판이 됐다.

      ‘혼혈(混血)’ 얘기를 꺼내자 조심스러워진다. 그는 “한국에서 혼혈인으로 살면서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라며 “다만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지금은 시야를 넓게 갖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게 어린 시절과 다르죠.”

      그가 최고로 꼽는 앨범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1987) 역시 그의 혼혈 인생과 연관돼 있다. 이 앨범은 인순이가 직접 쓴 동명(同名) 소설과 함께 나온, ‘줄거리’가 있는 작품. 소설 내용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 혼혈 여인이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내 뼈를 묻을 곳은 한국’이라는 생각에 고향에서 자살한다”는 것이다.

      인순이는 무대에서 딱 한 가지 생각만 한다. “난 여자다”라는 것. “여자는 예뻐지기를 원하고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잖아요. 나이는 잊고 오직 한 사람의 여자로 관객에게 비쳐지기만을 원하죠. 그래서 여성미 물씬 풍기는 드레스를 무대의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아무래도 ‘장수(將帥)’의 피가 흐르는 듯 했다. “앞만 보고 뛰어가는 돌격형, 생각나면 바로 해치워 버리는 스타일”이라고 수시로 자신을 소개하는 무대 아래의 그에게서 여자를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 올해로 가수 인생 30년째를 맞은 인순이가 16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를 찾았다.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멋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조선일보 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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