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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정치
새벽이슬1
2021. 12. 18. 21:45

돈과 정치
사마천의 사기(史記) 마지막 장은 부자 이야기를 다룬 화식열전(貨殖列傳)이다. 사마천은 부자의 롤 모델로 전국 시대의 거부 백규를 꼽았다. 백규는 “때의 변화를 열심히 살피며” “세상 사람이 버리면 사들이고, 사람들이 사들이면 버린다”(人棄我取 人取我予)는 장사 원칙을 고수했다.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공포에 사고, 광기에 판다’는 역발상 투자법이다. 사마천은 “아껴 쓰고 부지런한 것이 생업의 바른 길이지만 부자들은 꼭 기이한 방법을 쓴다”면서 남다른 발상·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0년대 초 중국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 중견그룹 오너를 만나 비즈니스 모델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긴가민가하며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다음 해 마윈은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를 만났다. 마윈의 6분짜리 브리핑을 들은 손정의는 즉석에서 4000만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14년 뒤 알리바바는 뉴욕 증시에 상장됐고, 손정의의 지분가치는 580억달러를 웃돌았다. ▶거부를 만드는 원동력은 시대 변화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이다. 석유시대를 예감하고 정유사를 독점한 록펠러, 철도 시대를 예견하고 철강업에 올인 한 카네기가 그랬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 펀드 매니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간파하고 역으로 베팅(공매도)해 8억달러를 벌었다. 반면 안목이 부족하면 대박 기회를 놓친다. 1982년 삼성전자는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업체 ASML 인수를 제안받았는데 1.5% 지분 투자만 했다. 그 1.5%의 가치가 현재 5조원을 웃돈다.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 업종에서 대박 뉴스가 자주 나온다. 한 벤처 펀드는 암호 화폐 거래소로 매일 100억씩 순익을 내는 두나무에 투자한 덕에 10년 만에 100배 수익을 냈다. 게임 개발자 출신 한 개인투자자는 이 펀드에 20억원 정도를 투자해 두나무 주식 72만주(약 3500억원)를 받았다. 한 사모펀드는 게임업체 크래프톤에 투자해 5700억원 이상의 상장 차익을 얻었다. 물론 이런 대박 뉴스의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실패가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10년 전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 2000만원을 투자했는데, 10년 새 1287배 올라 250억원이 됐다고 공개했다. 10년 전 메타버스 트렌드를 예측하고 그 주역이 될 떡잎을 알아본 선구안이 놀랍다. 부자가 될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안목이 정치에선 잘 안 통하는 것 같다. 부자의 자질과 정치인의 자질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일까. 조선알보 김홍수 논설위원 |